믹싱

원래 믹싱하고 다음날 들어보면 이상해서 고치고 다시 고치기를 되게 여러번 한다. 백탑청연같은 곡은 백번도 넘게 고쳤던것같다. 그렇게 해도 다른 상업 앨범이랑 사운드의 차이가나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곡은 첫믹싱버전에서 더 손댈 곳을 못찼겠다. 녹음을 포함한 후반작업을 최단 시간에 끝낸듯. 상업앨범과의 사운드 차이도 내 청음 수준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못느끼겠고

간간히 유튜브로 강좌를보다보니 프로들이 사용하는 컴프레서, 마스터링 이큐, 각종 정보나 팁이 시나브로 쌓여갔는데 이제 이정도면 남의 작업은 못해줘도 내 작업은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노하우가 쌓인것 같다.

믹싱

육아휴직

1년 이상 휴직하는 분들도 많은데 3개월 휴직한 주제에 함부로 말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아빠의 육아휴직 최대의 장점은 아이가 아빠도 양육자로 여겨서 엄마의 부재를 특별한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한 상태로 아빠와 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태어나 양육자와 본딩되는 100일간 아빠도 함께 아이와 지내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이후 육아에 많은 차이를 발생시키게 될 것이다.

성공적인 본딩의 결과 아빠는 어찌보면 더 피곤해 질 수도 있는데, 반면 보통 엄마만 느끼게 되는 ‘아이가 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어떤 감정’을 아이와 교류하게 된다. 이는 아이와 아빠에게 모두 좋은 경험이 되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아이’에 대한 엄마의 부담을 아빠가 나눠 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대게 아빠들도 양육의 부담을 나누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아이와 본딩되지 않은 아빠는 아이에게 양육자로 거부당하고 매우 제한되 역할만하거나 그마저도 못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육아휴직

개발자 아빠의 장점

아이가 잘먹던 이유식을 안먹는다. 입맛에 안맞아 처음부터 안먹는 게 아니라 몇 숟가락 잘 맏아 먹다가 갑자기 안먹는다.

처음에는 맛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 다음날 돼지 고기를 볶아 이유식 위에 덮밥처럼 올려줬다. 아이가 고기를 좋아하는 식성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줄 알았는데, 마찬가지로 몇 번 받아먹다 거부한다.

거부하던 순간을 몇번 떠올리고 혹시나 싶어 이를 살핀다. 어금니 자라에 하얗게 자리가 나는게 아무래도 이가 나느라 통증이 있는데 잇몸으로 씹다가 자극이 되고 아파서 거부 한 것 만같다.

해서 점심 이유식은 중기 이유식 수준으로 믹서로 재료를 갈고, 부드러운 식감을 증가시키기 위해 계란을 풀어 섞어주니, 다행히 잘 먹는다.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을 탓하는 일이 없다. 다 지가 만들어 놓은 것이 기 때문이다. 문제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는 문제의 원인에 대해 생각하게 습관화 되어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사고 방식이 때로 대화를 망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대화에 있어 원인과 대책보다 이해와 공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아이는 이해와 공감과 함께 만족스러운 해결책까지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먹지 않는 아이를 탓하지 않고 가설을 세우고 보완을하고 있는 나를 보다, 프로그래머로 헛살지 않았군, 절로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뿌듯했다.

개발자 아빠의 장점

주말

아내가 출산한 후 처음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토요일 하루 나가서 검사 두건을 하고온 아내의 얼굴에 확연하게 화색이 돈다. 아이는 아이대로 오랜만에 아빠랑 긴 시간 논 것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이가 자라고 움직임이 드세지면서 육체적으로 점점 힘들어지는 가운데, 위태위태하지만 그래도 다들 잘해주고 있다.

오랜만에 종일 아이랑 있었는데, 아이 캐어하다 낡은 바지는 찢어지고, 왼쪽 팔에 담이 왔다. 아내는 어떻게 매일 이렇게 하는지… 감사한 마음반, 걱정스러운 마음반. 다행이 아이가 내 캐어도 잘 받기 때문에 여차하면 내가 육아를 전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사회적으로 봐도 아내는 이제막 전문성을 확보해서 활동할 시기고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퇴물 개발자가 될 것다. 원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역할을 바꾸어야할 때가 올 가능성이 높다.

아내의 귀가가 늦어져서 저녁 이유식을 만들기위해 당골 정육점에 갔다. 왜 오늘은 엄마가 안왔냐고, 오늘은 일나가서 아빠가 왔다고, 이유식 고기를 사기위해 애를 안고온 나를 두고 그럼 애는 종일 누구랑 노냐는 물음이 당황스럽다.

‘이상한 나라의 육아휴직’ 이라는 곡을 만들고 있다. 아이를 재우고 빠져나와 작업하려고 했는데 또 아이보다 먼저 잠들어 버렸다.

주말

코로나 베이비

집에만 있기에는 답답해서 아이를 데리고 야외에 산책을 나간다. 아이가 보는 밖깥 사람들의 얼굴에는 마스크가 씌여있다. 한참 세상에 대한 이해를 키워가고 있는 아이에게 마스크를 쓴 얼굴이 당연한 것으로 입력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된다면 우리 아이는 코로나 세대로 명명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착잡해진다.

코로나 베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