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아는 몸

예컨대, 소설속 남자 주인공이 성 경험이 없는 총각이었다고 치자. 그러므로 성적 쾌감에 백치였다가 어떤 여성과의 반복되는 성관계를 통해 즐거움을 아는 몸이 되었다고 묘사하면 이 얼마나 촌스럽고 무지한 것인가 말이다. 물론 예전에 동대문 시장 육교 밑 리어카에서 팔던 작자 미상의 포르노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옆집 누나와의 성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아는 몸이 되는 것으로 곧잘 묘사되곤 했다(나는 이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이건다 이미 어린 나이에 내가 즐거움을 아는 몸이 되어버린 탓이다. 보통의 남자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성경험 없이도 이런저런 계기로 즐거움을 아는 몸이 된다. ㅎ). 포르노야 우리 모두가 알고있듯이 성에 대한 판타지이고, 판타지는 판타지로서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런 문장을 순수문학이랍시고 사용하는 것은 촌스럽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즐거움을 아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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