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독 기보

나는 만화 미생에 대해 사람들이 상찬하는 것만큼의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미생에는 직장 생활에 대한 모종의 판타지가 느껴진다. 직장 생활이란 게 그렇게 치열한 사람들이 모여,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하루하루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이 끊이지 않는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다. 물론 만화에서 다루는 경쟁과, 비열함과, 동료애가 공존하는 곳이 직장이긴하지만 훨씬 드라마틱하지 않고, 일상적인 모습에서, 암암리에, 그리고 미묘하게 잠깐 그 모습을 들어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달까. 한국의 드라마가 가족을 실제 보다 훨씬 뜨겁거나 차갑게 그리는 것만큼, 딱 그만큼의 수준으로 미생은 직장생활에 대해 그린다.

미생에서 흥미로운 것은 뜬금없게도 기보해설이었다. 미생의 특이한 점은 만화의 매화가 바둑 기보로 시작한다는 점인데, 만화책에서 이에 대한 해설을 읽게 되었다(기보 해설은 만화책에만 있는 듯 하다). 단순히 이 자리에 두었을 때의 노림수라던가 유불리를 해설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둑두는 사람의 심리상태, 본격적인 싸움을 두려워하고 있다거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꾹 인내하고 있다거나, 그러다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있다거나, 상대가 자기 약점을 치지 않은 것에 안도하고 있다거나, 죽는 자리인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사지로 들어가고 있다거나 등등등. 와와 기보 해설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줄 처음 알게 되었다. 바둑돌에 두려움, 인내, 의기양양함, 참담함, 안도, 소심함, 탐욕스러움, 재기발랄함 등의 온갖 감정과 심리상태가 반영되어있을 줄이야. 바둑을 본격적으로 배울 생각은 없는데, 이런 기보 해설이 더 있다면 읽고 싶다. 그런데 기보는 많아도 기보 해설은 쉽게 찾아지지 않아 아쉽다.

바독 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