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성 우위 사회에서 반평생을 살아온 유사 마초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은 이렇게 세팅된 사회에서 남자로서 취할 수 있는 이로움을 소극적으로 취하며 살아왔는데, 결혼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그런 태도를 버리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쉽지 않다. 가령 결혼하기 전에 나는 엄마가 하는 가사 일에 일절 도움을 주지 않고 주는대로 처먹기만 했는데, 결혼하고 아내와 엄마가 같이 주방일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내가 끼어들어 주방일 같이하는 게, 아내 입장에서야 당연한 것이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그동안 돕는 척도 안 하다가 자기 색시 일한다고 유난 떠는거냐’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그동안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살아온 삶의 업보를 이제서 받는 느낌이다. 삶의 허물은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한 맥락에서 들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