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내 기억에 강신주 칼럼이  문제 된 게 두 번인데, 하나는 케이블카가 설치된 설악산을 창녀에 비유해서 여성비하 논란에 섰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노숙자를 좀비에 비유해 논란의 됐던  것. 칼럼은 칼럼 자체로 완결된 글이고 문제의 칼럼은 그자체로 비판받아 마땅한 글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내경우 평소에 팟케스트나 책을통해 강신주의 생각을 대충알고있으니 저 두 칼럼이 어떤 의도에서 씌여진 것인지  짐작하는게 어렵지 않다. 첫번째 칼럼은 창녀를 비하하려는게 아니라 돈을주고 성을사는것과 캐이블카를 이용해 산을 오르는 행위가 같다는 이야기였고 – 즉 창녀를 비하하려는게 아니라 창녀에게 돈을 주고 성을사는 행위를 비하하는 글이었고- 두 번째글은 우리 모두 수치심을 잃어버린 좀비에 불과한데 극단적 사례를 노숙자로 지목해 논란을 자초한것. 물론 두 글모두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지 못한 못쓴글이라는생각이다. 강신주 글의 특징은 강연 때의 말과 달리 돌리고 비유해서 문학적으로 포장하는경우가 많은데 그게 철학하는데 적절한 방법인지 잘모르겠다. 철학의 언어는 명료할 수록 좋은것 아닐까? 강신주에 대한 내 불만은 누굴 비하고 그런것보다는 문장에 허영이  너무 많이 녹아있다는데 있다.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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